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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굉장히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원본링크

작성일 :
20-06-19 08:59
작성자 :
기숙추천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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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상민(배문고 졸업)

(2019학년도 연세대학교 치의예과, 동국대 의예과, 건국대 수의예과 합격)

2018 수능 국어 3등급, 수학(나) 1등급, 영어 2등급, 물리 4등급, 생명 5등급

2019 수능 국어 1등급, 수학(가) 2등급, 영어 1등급, 물리 1등급, 생명 1등급


저는 굉장히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재학생 시절 내신은 4점대에, 딱히 선생님들의 눈에 거슬리는 행동도 하지 않았으며,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집에서 두세 시간씩 게임을 하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꿈이나 미래에 대해선 깊게 생각하지 않았고, 그런 안일함이 빚어내

 뭐든 적당히 하자는 적당주의를 갖고 살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목표로 하던 대학은 2등급대의 정시 점수면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고3시절 저의 6,9월 모의고사의 성적으로는 아슬아슬하게 걸치는, 조금만 삐끗하면 바로 떨어질 정도의 성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수능 때 반드시 점수가 더 높게 나와 줄 거라고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가졌었습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참패였습니다.

 수능 때 평균 3등급을 받은 저는 목표로 했던 대학 두 곳에 모두 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대로 끝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저는 실의에 빠진 채로 겨울을 보냈습니다.

 그 당시 폐인처럼 지내던 제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시던 아버지께서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생각하시고,

 저희 집안 환경으로는 생각도 못하고 있던 재수를 제게 시켜주기로 결심하셨습니다.

 갑자기 생겨난 뜻밖의 기회에 여러 재수학원을 알아보던 저는 이 곳 청평 한샘 기숙학원을 선택했습니다.

 사실 그 당시 이 곳을 고른 이유는 크지 않았습니다. 개원 첫 번째 해라는 점이 제게 큰 이득으로 작용할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이 선택은 후에 신의 한 수로 작용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저는 갑작스런 재수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재수 초기에는 고통스런 나날의 연속이었습니다.

 학창시절 달고 다니던 핸드폰과 컴퓨터는 일체 사용 금지일뿐더러,

 적당주의로 지내던 제게 적당히가 아닌 죽기 살기로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은 머리로는 받아들였어도

 몸까지 따라가기는 힘든 일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저는 학원 선생님들의 수업 방식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습니다.

 학교에서 듣던 내신과 수능이 섞인 수업과는 달리 오로지 수능만을 위한 수업은 제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처음 몇 주간은 수업 내용을 복습하는데 모든 자습시간을 사용해가며 선생님들의 수업 방식에 적응해 나갔습니다.

 그러다 공부에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선생님들께 찾아가 코칭을 받고,

 힘들 때면 지도 선생님들께서 전달해 주신 부모님의 편지를 보며 버티어 나갔습니다.

 안일했던 마음가짐도 바로잡아 나는 반드시 이긴다, 나는 수능 올 1등급을 받을 것이다,

 나는 수능이 끝난 후 재수 성공 수기를 적을 것이다. 라고 자기 세뇌를 하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2달 정도가 지나고 나니 선생님들의 수업 방식에 완벽히 적응했고,

 덩달아 문제를 바라보는 눈도 뜨이게 되었습니다. 슬슬 복습뿐만이 아닌 제 공부를 하기 시작할 무렵,

 6월 모의고사를 치렀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성적 우수 장학금을 받는 것은 물론, 학기 초 학원 내 하위 반으로 입소했던 제가

 상위 반으로 월반할 수 있을 만큼의 성적을 받았던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상위 반으로 월반한 저는 그때부터 조금 다른 방식의 공부를 시도했습니다.

 수업 복습과 제 공부를 하고 남은 시간들을 다른 학원생들의 질문을 받는데 할애하며,

 제가 부족한줄 모르고 있던 부분을 조금씩 메워 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 독특한 공부 방식에 대해 시간 소비가 크다고 우려를 표하시는 선생님이나 학원생도 많았지만,

 저는 제게 맞는 공부 방법이라 생각하며 수능 전날까지 줄곧 다른 학원생들의 질문을 받으며 지냈습니다.

 질문을 하러 오는 학원생들의 저에 대한 신뢰와 의지는,

 다른 사람에게 틀리지 않은 지식을 전달해야 한다는 공부에 대한 의무감을 갖게 만들어

 제가 공부를 적당히 할 수 없는 이유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 덕에 모의고사와 주간 테스트 점수는 수능 직전까지 계속해서 상승했으며,

 최종적으로 수능 때는 수학(나)형을 수학(가)형으로 바꿔서

 수학 2등급을 제외한 나머지 전부 1등급이란 기적적인 결과를 얻어

 “내가 승리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재수 성공 수기를 쓰게 되어 재수 생활동안 줄기차게 읊었던

 자기 세뇌 문구 중 2가지를(올 1등급은 아쉽게 실패했지만) 성취했습니다.

 정말로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말하는 대로 이뤄진 셈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본 제 재수 생활은 행복했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확실하고 뚜렷한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해주는 환경,

 그리고 목표를 끝까지 놓지 않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던 청평 한샘에서의 제 1년은 가치가 있었다고

 저는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들도 청평 한샘에서의 앞으로의 1년이 가치가 있었다고,

 무의미하지 않았다고 나중에 당당히 말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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